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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자료 모음

창세기 6장 2절 3절 해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영이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실수를 범하여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6:2-3)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이며 사람의 딸들은 누구일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실수란 무엇이며 그들 사이에 태어난 "네피림"(거인이라고도 해석되지만 히브리 기원 원어로는 네필(nphil);폭군)은 왜 사악 했을까요? 

우선 하나님의 아들들 (sons of God) 내지는 '신들' (gods)을 설명하는 성경 구절을 보겠습니다. 
(시편 82:6) 내 말을 들어라. '너희는 신들이며, 지극히 높은 분의 아들들이다' 라고 하였으나,
(욥기 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요한복음 10:34-3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선언하는데, 너희는 다 신이다'라는 말이 너희 율법에 쓰여 있지 않느냐?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불렀으니 성경은 파기될 수 없다.   

혹, 어떤 해석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로 기록하는데 천사들은 장가가거나, 시집 가지 않는 존재 (마 22:30)이므로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일수는 없을것 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설명하신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 믿는자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부분을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창세기 4:26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4:26) 셋도 역시 아들을 낳고,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습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가복음은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였다고 (눅 3:38) 말합니다. 그리고 그 아담은 백서른 살이 되어서야 자기의 모습, 곧 자기 형상을 닮은 아들, 셋을 낳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전에 가인과 아벨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셋의 자손들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믿는자들이 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셋의 자손들이 정식 아담(하나님의 아들)의 자손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입니다.

그에 반해,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살아남긴 했지만 그의 자손 라멕은 사람을 죽여놓고도 "가인을 죽인 사람은 일곱 배로 벌을 받지만 라멕을 죽인 사람은 일흔일곱 배로 벌을 받을 것이다." 라고 뻔뻔한 말을 하는 잔인한 사람이였습니다. 또 다른 가인의 자손중 두발가인이라는 사람은 구리와 철 연장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짐작컨데 그 오래전에 구리와 철을 다루었다면 전투용 무기도 만들었을것 같습니다. 이 하나님을 잊고 살던 사람들, 악마가 쉽게 손을 뻗칠수 있었던 가인의 후손의 딸들이 바로 사람의 딸들이였습니다. 네피림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의 자손이라고 적혀 있는데 또 그들을 고대의 용사였다고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철을 다루었고 가인과 라멕의 잔인한 내성을 본받은 큰 권력을 잡은 폭군들이 아니었을까 생각듭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따르던 자들이 이방 여자들과 혼인해 타락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솔로몬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각 권력과 부를 손에 넣었던 이 솔로몬이 마지막으로 타락한 이유가 바로 이방신을 가져온 부인들에 의해서 였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받은 죄없는 몸을 이브에게 받은 선악과를 먹어 더럽혔듯이, 이 셋의 자손들도 가인 후손의 딸들의 미모에 반해 결혼 후 타락했다고 짐작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실수였고 인간은 다시 육체(하나님과의 연결이 끊긴 존재)가 되어 하나님께서 홍수로 쓸어 버릴 작정을 하실만큼 극도로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지금의 하나님의 아들들,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일까요? 

요한 일서 3:1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그분의 자녀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 하나님의 이름을 경배하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4에 보시면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에서 사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신(gods)이라고 부르신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그분의 경이로운 사랑을 알아가면 갈수록 그분을 향한 내 사랑은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외 해석들....


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

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
(Sons of God, Daughters of Men)


"복음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마귀들의 육신에 대한 갈망은 최소한 성적인 경험에 대한 갈망과의 어떤 유사점을 시사한다." - 데릭 키드너 (Derek Kidner)
 
1947 년 양을 치고 있던 한 아랍 소년이 사해(死海) 근처의 고대 동굴을 우연히 발견한다. 동굴 안에서는 사해문서 또는 쿰란 텍스트(Qumran Texts)로 곧 알려지게 될 매우 귀중한 고대 문서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들 가운데 창세기 외전(-- 外典, Genesis Apocryphon)으로 알려지게 될 문서가 있었다. 이 문서는 당시 처음에는, 오랫동안 유실되었던 라멕의 서(-- 書, the Book of Lamech)로 추정되었다. 두루마리는 라멕이 한 말과 에녹(Enoch)에서 아브라함(Abraham)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졌으나, 라멕의 서는 아니었다. 성경에 따르면, 라멕은 므두셀라(Methuselah)의 아들이며 또한 노아(Noah)의 아버지이다. 그는 홍수 이전 시대의 열 족장 중 아홉 번 째였다.

창세기 6 장에서 소개된 네피림(Nephilim), "하나님의 아들들" 및 "사람의 딸들"에 관한 내용이 창세기 외전에도 역시 소개 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또한 창세기 외전은 성경에서 간결하게 언급된 부분들에 대하여 보다 더 상세한 접근을 하며, 이 고대의 이야기들이 고대 유대인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해석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쿰란에서 발견된 창세기 외전 사본(寫本)이 만들어진 시점은 기원전 2 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사본의 내용은 훨씬 더 오래된 출처를 토대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본은 1947 년 발견 당시, 세월과 습기로 인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낱 장들은 서로 심하게 눌러 붙어 있어서 텍스트가 해독되고 알려지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학자들이 그 내용을 공표하였을 때에 문서는 천상의 존재들이 지구에 내려왔음을 보여 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들 천상의 존재들이 어떻게 지구의 여자들과 관계를 하여 거인들을 낳게 되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이 같은 스토리는 신화인가 역사인가? 우화인가 아니면 사실인가? 많은 고대의 전설들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이 전문적인 연구에 의해 밝혀져 왔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 문제의 답을 구하기 위해서,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권위적인 문서, 즉 성경에 의존하기로 한다.

창세기 6 장 1-4 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 그로 인하여 그들이 사람의 딸들과 거인 네피림이라고 알려진 거인 자손들을 낳는다. 창세기는 더 나아가 이들 네피림이 "용사" 그리고 "유명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들인가? 그들은 인간이었는가? 아니면 우주에서 온 외계 종족들이었는가?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인가

"사람의 딸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식별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성경에서 여자들을 지칭하는 통상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아들들"에 있다. 이 암호 같은 호칭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되는 세 가지 주요 해석이 있다.

첫째로, 정통 유대교 내부의 한 그룹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귀족" 혹은 "왕족"을 일컫는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거의 아무도 이 견해를 따르지 않는다.

둘째로, 일부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들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이 땅의 여인들에 매혹되어 그들에게 정욕을 느끼게 되었다고 보는 시각이다. 평판 있는 많은 성경 주석가들은 심리-생리학적(psycho-physiological) 근거에서 이 이론을 거부해 왔다. 하늘에서 온 천사들이 지상의 여자들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어떻게 믿으라는가 라는 것이 그들이 반문하는 바이다. 필라스트리우스(Philastrius)는 이러한 해석에 노골적인 이단(a down-right heresy)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셋째로, 많은 유명한 학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셋(Seth)의 남자 후손들임을 그리고 "사람의 딸들"은 가인(Cain)의 여자 후손들임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창세기 6 장은 신자들이 불신자들과 결혼하는 하나의 초기적 실례(實例)라는 이야기가 된다. 셋의 선한 아들들이 가인의 악한 딸들과 결혼을 하였고 그 결과인 튀기 자손들이 이후에 그들의 퇴폐와 타락으로써 유명해졌으며, 결국 그 상태가 하나님이 간섭하여 인류를 멸절 시킬 수 밖에 없었을 정도까지 계속하여 이르렀다는 것이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의 다음과 같은 주석은 이 견해를 지지하는 자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종교의 지도자들이었던) 셋의 아들들은 신과 신성함에 관한 이방인들이며 신성모독적이던 사람의 딸들과 혼인을 하였다. 셋의 후손들은 그들끼리만 어울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추방되었던 가인의 종족들과 섞였던 것이다." (1)*
==== 역주:
http://www.ccel.org/h/henry/mhc2/MHC01006.HTM

그러나 이 이론을 지지하는 자들의 우수한 학문적 혈통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논리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 그들의 해석은 순전히 자기중심적 해석(eisegesis)이며, 그들은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 텍스트를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읽는 행위에 대하여 유죄이다.


그릇된 주해 (FALSE EXEGESIS) 

그들의 해석은 다른 근거상으로도 마찬가지로 실패한다. 홍수 이전 또는 이후, 하나님은 "이종족간(異種族間)의 혼인" 이라는 죄를 이유로 인류를 멸망시킨다고 위협하거나 멸망시킨 적은 한 번도 없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볼 수 있는 동일한 죄에 대한 단지 말씀으로써의 책망과 이러한 극단적인 형벌을 서로 조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하나님이 일관되게 역사하시는 분이라면 인류는 그 동안 수도 없이 멸망 되었어야만 한다.

창세기 6 장 2 절은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을 대조하는 내용이 아니며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관한 것이다. 만약 "셋의 아들들"이 문자 그대로 "셋의 아들들"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러한 이종족간 혼인에는 셋의 딸들을 제외한 셋의 아들들만이 관계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가인의 딸들만이 관계되었다면, 그것은 아들들이 아닌 딸들만의 일이어야 한다. 이는 단지 셋의 아들들만 경건(敬虔, godly)하였고 가인의 딸들만이 악하였다는 또 다른 기이한 가설을 암시한다.

셋의 아들들의 경건함에 대한 증거를 구하는 데에서 이런 기이함이 발생한다. 하나님이 인류 전체를 심판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그는 사람들 중에서 단 한 가족(노아의 가족)만이 경건함을 보았다. 이 때 경건한 셋의 아들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심지어 셋 자신의 아들마저도 의로운 자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의 이름은 에노스(Enos)였으며 이는 "죽는 속성(mortal)" 또는 "약함(frail)"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는 분명 그 이름이 뜻하는 바에 충실하게 살았다. 창세기 4 장 26 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 문장은 별로 부정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때에 와서야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러면 이전의 아담과 아벨 그리고 셋 자신은 누구를 불렀다는 말인가?
==== 역주:
* Strong's 0583 and 0582 from the root, 0605

일부 학자들의 보다 더 정확하고 문자적인 번역에 따르면 이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 후 사람들은 그들 자신들을 여호와의 이름과 동등하게 칭하였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그 후 사람들은 그들의 신들(우상들)을 여호와의 이름과 동등하게 불렀다." 만약 이 두 가지 번역들 중 어느 하나가 맞다면 셋 계열의 경건함에 대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실제 에노스와 그의 계열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다른 계열과 마찬가지로 경건하지 못했다는 것이 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신성한 기록은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말한다: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창 6:12)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bene Elohim)"이라는 호칭은 결코 사람에게 쓰이는 법이 없으며 언제나 하나님보다는 낮고 사람보다는 높은 위치에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일컫는데 쓰인다. 이러한 범주에 들어가는 종족으로서는 천사들이 유일하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용어는 선한 천사들과 악한 천사들 양쪽 모두에 적용되어 쓰인다. 이들 천사들에 대하여 오거스틴(Augustine)은 기록하기를:

"신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육체적 불멸성을 갖고 있으며, 또한 인간들과 같은 욕망을 갖고 있다." (2)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칭호는 구약에서 네 번 더 등장하는데, 모두 각각 천사들을 일컫는데 사용된다. 첫번째 예는 다니엘 3 장 25 절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불타는 풀무 안을 보니 네 명의 사람이 보이는데 "그 네째의 모양은 신의 (그) 아들(the son of God*)과 같았다." 보다 현대적인 해석에서는 "신들의 (한) 아들(a son of the gods)과 같다" 로 다르게, 그리고 보다 분명히 해석이 된다. 이 시대는 예수님이 아직 하나님의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로서 등장하기 이전이므로, 여기에 나오는 "아들"은 천사를 일컫는 것이어야만 한다.
==== 역주:
* son of God은 정관사로 수식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음.

또 다른 예는 욥기 38 장 7 절이다.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쁨으로 외치는 장면이 있다. 그 때는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이므로,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이 호칭에 걸맞는 존재는 천사들 밖에는 없는 것이다!

욥기 1 장 6 절과 2 장 1 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호와 앞에 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 사탄이 서 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들을 지칭하는 것임을 더욱 확실히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호칭은 구약에서는 일관되게 천사들에게 적용되며 따라서 창세기 6 장 2 절의 "하나님의 아들들"도 역시 천사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논리적이다.


하나님의 아들들: 세 가지 범주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신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들 또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칭한다. (눅3:38, 요1:12, 롬8:14, 요3:1) 컴패니언 바이블(Companion Bible)에서 불링어 박사(Dr. Bullinger)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어떤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는 경우는 오직 하나님의 구체적인 창조 행위에 의할 때 뿐이다." 이는 왜 거듭난 성도들이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가에 대한 답이 된다. 또한 왜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아담은 하나님의 구체적 창조행위에 의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5:1)"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담의 자손들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담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 아담은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창5:3)" 아들을 낳았다.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아담의 자손들은 "사람의 아들들"이었던 것이다.

이에 관하여 루이스 스페리 체이퍼(Lewis Sperry Chafer)는 다음과 같이 흥미로운 표현을 한다:
 
구약성경에서의 용어법(terminology)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들로 불리우는데 반하여 천사들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일컬어진다. 신약에서는 이것이 반전된다. 천사들이 종들이며 크리스쳔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3)

고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용어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범주 안에 드는 존재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천사들, 아담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도들. 이들 세 그룹 모두 특별한, 그리고 구체적인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의해 창조된 존재들이다. 창세기 6 장의 용어(역주: 하나님의 아들들)의 용법에 관해서는, 그것이 아담 또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한 이상, 이 용어는 하나님에 의해 직접 창조된 천사들 가리키는 것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신약으로부터 오는 빛 (LIGHT FROM THE NEW TESTAMENT)

두 개의 신약 구절이 창세기 6 장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빛으로서 등장한다. 유다서 6, 7 절과 베드로후서 2 장 4 절이다. 이 구절들은 어느 한 시점에서 천사들이 그들의 원래 상태에서 타락하여 비정상적이고 불쾌한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다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이 천사들은 그들 본래의 영역 및 권한을 지키는데 실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 고유의 "처소(habitation)를 떠났다." 여기서 처소는 매우 중요한 단어이다: 그것은 "거주하는 장소(dwelling place)" 혹은 "하늘(heaven)"을 뜻한다. 또한 희랍어 원문의 idion("their own")*이라는 단어는 그들이 그들 고유의 사적(私的)이고 개인적이고, 독특한 소유(possession)를 떠났다는 의미를 더한다. (4) 하늘은 천사들의 사적인 그들만의 거주 장소였으며 인간을 위한 거주장소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또한, 왜 성도들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하늘이 아니라 하나님이 새로 창조할 완전한 땅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된다. (계21:1-3) 하늘은 천사들을 위해 예약되었으나 유다서 6-7 절의 천사들은 그 장소를 버린 것이다.
==== 역주:
* 그들 자신의, 개역한글 유다서 6 절 "자기 처소"에서의 "자기"로 번역됨
 
이 천사들은 그냥 잠시 하늘을 떠났던 것이 아니라 영원히 떠났다. 여기에 사용된 희랍어 동사 "apoleipo"는 aorist형 시제(時制)이며 이는 한번 저지름으로써 영원한 상태를 유발하는 행위(once-for-all act)의 시제이다. 이러한 행동을 함으로써 이 천사들은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해버렸다. 그들은 루비콘(Rubicon) 강을 건넌 것이다. 케네스 웨스트(Kenneth Wuest)에 따르면, 그들의 행동은 "복수의 변절(apostasy with a vengeance)이었다." (5)
 
이들 천사들의 구체적 범죄에 관한 내용은 유다서 7 절의 사실들로부터 제시된다. 소돔과 고모라의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간음(fornication)"의 죄였으며, 이는(fornication-역주) "다른 색(strange flesh)을 따라감"을 뜻한다. "다른(strange)" 색(flesh)은 이종(異種)의 육체를 의미한다. (희랍어의 "heteros") 이런 특정한 혐오스러운 죄를 저지르기 위해서 천사들은 그들의 고유한 영역을 포기하고 하나님에 의해 그들에게는 금지된 영역을 침범해야만 했다. 웨스트(Wuest)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천사들은 다른 성질(nature)을 갖는 피조된 존재들의 영역을 침범하기 위하여 그들 고유의 성질(natures)의 한계를 위반하여 일탈하였다." (6)

알포드(Alford)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것은 지정된 자연적 순리에서 떠난, 자연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지정하신 것과는 다른 육체를 향한 출발이었으며, 비자연적인 것을 구하는 행위였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존재의 계급이 서로 섞이는 것은 하나님이 의도한 것에 반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심판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천사들에 대한 유혹

또 다른 신약의 구절이 창세기 6 장의 내용과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 고린도전서 11 장 10 절에서 바울은 여자는 남편에 대한 복종의 상징으로, 또한 "천사들을 인하여" 머리를 덮어야 함을 가르친다. 오랜 세월 동안 주석가들은 이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해왔다. 난데 없이 웬 천사들에 대한 언급이란 말인가? 이것을 창세기 6 장에 있는, 땅의 여자들의 육체적 매력과 유혹에 천사들이 굴복하는 장면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봐도 좋은 것인가? 분명히 바울은 머리를 덮지 않은 여자는 천사들에게마저 유혹이었음을 믿었다. 윌리엄 바클리(William Barclay)는, 창세기에서 천사들을 유혹했던 것은 여자들의 긴 머리의 아름다움이었다고 증언하는 랍비들의 오래된 전승(傳承)에 대한 언급을 한다. (6)


이종(異種)의 혈통 (STRANGE PARENTAGE)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의 결합에서 태어난 자손들은 매우 비범하여 이로써 그들의 비정상적 태생(parentage)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존재들의 부모가 보통의 인간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의 어미들 혹은 아비들 중 어느 한 쪽이 인간이었을 수는 있지만 양쪽 모두 인간이었던 것은 아님이 확실하다. 부계나 모계 중 한 편이 인간 이상의 초인적 존재이어야만 한다. 이들 자손의 용맹성과 비범한 성격은 이로써만 설명이 된다.
 
성경에 따르면, "모든 것은 그 종류대로"라는 것이 생식(生殖)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법칙이다. 하나님의 법칙은 정상적인 부모에게서 거인들이 나오는 일을 불가능케 한다. 네피림과 같은 기형성이 생산 되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인 혈통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거인들?

"네피림(Nephilim)"*이라는 단어는 공인 킹 제임스 성경에서 "거인들(giants)"로 번역되고 있다. "당시에 땅에 거인들이 있었고..." (창6:4) 그들이 한 가지 이상의 이유에서 거인이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네피림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는 "거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추락(타락)한 자들(fallen ones)을 뜻하는 "naphal"**이라는 어원으로부터 파생된다. 최근의 대부분 성경역에서는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고 있다.
==== 역주:
* Strong's 05303 from the root, 05307

희랍어로 된 70인 역(Septuagint)에서는 "네피림"이 "gegenes"로 번역되어 있다. 이 단어는 "거인"을 암시하지만 사실상 크기나 힘과의 연관성은 별로 없다. "Gegenes"이 의마하는 것은 "땅 태생(earth born)"이다. 동일한 용어가 신화에 등장하는 "타이탄족(族)(Titans)"을--부분적으로 하늘, 그리고 다른 일부는 땅을 동시에 기원으로 갖는 것으로--묘사하는데 사용되었던 사례가 있다. (7)

히브리어와 희랍어의 이들 단어들은 강한 육체적 힘의 의미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또한, 초자연과 자연이 혼합된 혈통은 당연히 이러한 성질을 암시하게 마련이다. 성경에 따르면 천사들은 그들의 힘으로써도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강한 자들의 아들들(sons of the Mighty)"로 자주 언급된다. (시103:20) 그러므로 만약 그들을 낳은 자들의 힘이 세고 강하다면 자연 그들의 후손들도 그러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서로 다른 인간 부족들간의 혼인으로써 (신자들과 불신자들 사이의 혼인 등) 힘과 능력에서 뛰어난 후손들이 태어난다는 성경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증거는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한 해석은 단지 불가능한 가설들을 양산할 뿐이다.

민수기 13 장 33 절에서는 다시 등장하는 "네피림"의 크기와 힘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그들의 초인적인 면모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남지 않게 된다. 여호수아의 첩자들이 가나안에서 정탐한 것을 보고할 때 그들은 일부 가나안의 거주민들을 "거인"으로 묘사한다.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일부 주석가들은 민수기 13 장의 네피림이 타락한 천사들의 제 2 차 출몰과 관련 된 것이라 추측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이에 대한 암시를 다음과 같이 기록된 창세기 6 장 4 절에서 찾는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이 "그 후"라는 말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던 시기에 거기에 있던 네피림에 대한 언급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는 이전 홍수의 심판과 같이, 왜 하나님이 가나안을 완전히 멸절시킬 것을 명하였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네피림 - 부활은 없다

네피림과 그들의 후손은 보통의 유한한 인생들을 위한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이사야서에 있다. 이사야 26 장 14 절을 보면: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여기서 “사망함(deceased)”으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단어는 “라파임(Rephaim)”*이다. 만약 성경의 역자가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은 채로 그냥 두었더라면 잘못된 해석을 많이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읽어야 한다: "죽은 자들, 그들은 다시 살지 못할 것이고; 라파임, 그들은 일어나지(rise) 못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라파임은 네피림의 한 분파로 이해되며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이 부활에 참여하지 못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 관하여는 사정이 다르다: 모든 인간은 생명의 부활로 또는 심판(역주: damnation, KJV)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 (요5:28-29)
==== 역주:
* Strong's 07496 from 07495 in the sense of 07503

우리는 이미 구약의 희랍어 역(70인 역, Septuagint)에서 네피림이 "거인들(gegenes)"로 번역되었음을 보았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은 70인 역에서 어떻게 번역되는지 살펴보자. 일부 사본에서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그대로 남아 있으나, 알렉산드리안 텍스트를 포함하는 다른 일부의 사본에서는 "angelos"라는 단어로 번역 되어 있다. 알렉산드리안 텍스트는 그리스도의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었으나 그가 이 부분에 대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였다는 흔적은 없다. 그의 침묵을 이러한 번역에 대한 동의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인가?


텍스트에 대한 강간

"셋의 아들들" 설을 옹호하는 모든 주장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면, 그 주장의 논거들 중에서 설득력이 있는 부분은 그것이 보다 더 합리적인 것처럼 들린다는 것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셋의 아들들"이란 해석은 인간적 이성의 비위에 보다 더 잘 맞는다. 이성적 사고라는 것은 타락한 천사들이 땅의 여자들과 성교를 하였다는 따위의 믿지 못할 생각에 절대 동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천사들은 물리적인 육체가 없지 않은가? 그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에 속한다! 이성적 마음은 그러한 불합리성에 반감을 갖게 마련이므로 결국 어떻게 하게 되는가? 당연히 타협, 편안하고도 이성적인 해석을 위한 타협 밖에는 없는 것이다--"셋의 아들들"과 "가인의 딸들"이라는 해석으로.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이 명백히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에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바는 명백히 그게 아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말씀이 명백히 의미하는 것에다가 인간적인 해석을 덧입히는 행위는 성경 텍스트에 대한 강간이다. 더 나아가서 초자연적 세계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면, 인간적 이성이라는 느낌은 전혀 근거가 될 수 없다.


유대인들의 조상과 초대교회의 교부(敎父)들

유대인 조상들은 창세기 6 장 2 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을 해석할 때 항상 변함 없이 "천사들"로 해석하였다. W.F. 올브라이트(W.F. Allbright)와 같은 권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부분(창세기 6 장 2 절)이 낭송되는 것을 들었던 이스라엘인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천사들과 여자들 사이의 육체 관계를 떠올렸다." (8)

매우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었던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 of Alexandria)는 "거인들에 대하여 (Concerning The Giants)" 라는 제목의, 이 주제에 관한 간결하지만 훌륭한 논문을 썼다. 희랍어 역 성경에 대한 그의 주석을 논증하면서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천사들"로 서술하였다. 밤버거(Bamberg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구절을 그의 글에서 발견했다면, 그는 분명히 그에 대한 언급을 하도록 영감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9)

필로(Philo)는 확실히 창세기의 구절들을 역사적인 사실들로 받아들였으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혼"이라는 단어가 선하고 악한 존재들 양쪽 모두에게 적용 되듯이, "천사들"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루시퍼(Lucifer)를 따르는 악한 천사들은 나중의 시점에서 육체적 욕망의 유혹에 저항하는데 실패하였으며 결국 거기에 굴복하였다. 그는 이에 더하여, 거인들의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며 단지 그 이야기는; 어떤 자들은 땅에서 태어나고(earth-born), 반면에 다른 어떤 자들은 하늘에서 태어나며(heaven-born), 하나님으로부터 나는(God-born) 자들은 가장 고귀하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하여 거기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10)

초대교회의 교부들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믿었다. 유스틴 마터(Justin Martyr), 이레네우스(Irenaeus),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 테르툴리안(Tertullian), 유제비우스(Eusebius), 암브로스(Ambrose) 등이 모두 이 해석을 수용하였다. 또 니케아 이전의 교부들(Ante-Nicene Fathers)의 말에 따르면: 천사들은 처녀들에 대한 불순한 사랑에 빠졌으며 육체에 정복당하였다... 그리하여 저들 처녀 애호가들은 거인이라 불리는 자들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11) 그리고 또다시, "...천사들이 일탈하였다. 그리고 여자들에 대한 사랑에 사로잡혔으며 자손들을 낳았다." (12)

"하나님의 아들들"의 해석에 관해서, 기원후 5 세기 이전의 시기에는 그것을 천사 이외의 것으로 여기는 해석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는 또한, 유대인의 조상들이 갖고 있던 그들 자신들의 언어에 대한 지식을 부인할 수도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들"로 일관적으로 번역하였다. 화려한 범세계주의자였으며 동시에 역사가였던 요세푸스(Josephus)의 증언 역시 최상급의 중요성을 갖는다.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유대 상고사 (Antiquities of the Jews)*"에서 그는 땅의 여인들과 교제하는 타락한 천사들의 전승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그는 이 전승을 단순히 알고 있었던 것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결합에 의해 태어난 자손들이 초인적 힘을 어떤 식으로 소유하였는지, 그리고 그들의 극단적인 사악함이 어떻게 알려졌었는지에 대해서까지 언급을 하고 있다: "전승에는 이 사람들은 그리스인들이 거인이라 칭했던 사람들의 행위와 흡사한 행동을 하였다고 하기 때문이다." 요세푸스는 이에 더하여, 그들의 악한 행위로 인하여 노아가 패역한 천사들의 후손인 그들에게 충고를 하였다고 기록한다. (13)
==== 역주:
http://exodus2006.com/jos-ant.htm
   - See Chapter 3, Book 1 for the relevant passages at: http://exodus2006.com/jos-ant01.htm

"천사들" 등의 표현에 대한 해석과 관련하여 가장 확실한 논거는 아마도 가장 단순한 데 있을 수도 있다. 창세기의 기자(記者)의 의도가 "셋의 아들들"이었더라면, 그는 그냥 그렇게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의도가 그런 것이었더라면, 그에 대한 구절은 의심의 여지 없이 "셋의 아들들이 가인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는 식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보다 훨씬 더 사악한 것 즉, 지옥의 천사들과 땅의 악한 여자들과의 성적인 연합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한 연합의 중죄성(重罪性) 및 인류에게 미칠 심각한 영향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종족을 전부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여기에 오염되지 않았던 단 한 가족만이 예외였다.


궁극적인 죄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였고 땅 위의 다른 모든 피조물 위에 두셨다. 하나님이 창조된 모든 것들을 보시니 좋았고 그 중에서 사람은 아주 좋게 여겼다. 사람은 하나님 자신과의 교제를 위하여 지음 받았으나, 곧 그는 창조주가 아닌 창조된 자를 숭배하였다. 많은 세대가 지나지 않아서 인류는 마귀들과의 가증스러운 연합에 의해 오염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지옥과 땅이 하나님과 하늘에 대항하여 함께 연합함과 같았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분노는 사람을 창조한 것을 스스로 후회할 정도였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6:5-6)

하나님이 사람과 짐승을 지면에서 쓸어버릴 만한 큰 홍수를 일으키신 까닭은 특히 이러한 궁극적인 죄 때문이었다. 조셉 홀(Joseph Hall)은 그의 노년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죄악으로 인한 세상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은 홍수로 씻어버릴 때가 왔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씻겨 없어져버릴 때 까지 사람들은 사악함에 더욱 가까이 나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씻겨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그것은 땅의 티끌 속으로 너무나 깊숙히 흡착되어 하나님은 그것을 오랫동안 바다 밑에 잠겨 젖도록 내버려 두신 것이다." (14)


노아는 감염되지 않았는가?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이 대심판에서 면제되었던 이유는 매우 중요하다. 창세기 6 장 9 절은 "노아는 의인이요"라고 말한다. 그는 뒤틀린 시대에 의와 경건함의 표본으로서 존재했다. 이전의 에녹과 같이 노아 또한 "하나님과 동행(walked with God)"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노아가 홍수 심판을 모면한 또다른 이유를 놓치고 있다. 창세기 6 장 9 절은 노아가 "당세에 완전한 자"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그의 윤리적이고 영적인 완전함을 의미하는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창세기 9 장 20-23 절의 내용은 그러한 완벽함에 대한 반증(反證)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그를 "완전한" 자라 부르는 의도는 무엇인가? 여기에 완전하다는 뜻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단어는 "tamiym"*으로, "taman"**이라는 어근에서 파생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흠이 없는"을 의미하며, 출애굽기 12 장 5 절, 레위기 1 장 3 절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희생양은 아무런 육체적 흠이 없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아의 완전함도 그런 의미에서의 완전함이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일차적으로는 윤리적 또는 영적인 성품에 대한 것이 아니며, 물리적인 순수함을 뜻한다. 노아는 외계의 침략자에 의해 오염되지 않았던 것이다.
==== 역주:
* Strong's 08549
** Strong's 08552

타락한 천사들이 초래한 만연된 부패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만이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고 있었다. (15)

다시 한번 말하자면:

노아의 혈통은 유전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16)

이는 물론 땅 위의 다른 가계(家系)들은 네피림에 의해 오염되어 있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이는 인류에 대한 사탄의 공격은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에 걸친 것이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하나님이 전세계적 심판을 명령한 것도 이렇게 되면 별로 놀랍거나 이상한 일도 아닌 것이다.

가증스러운 일에 참여한 타락한 천사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그들을 "영원한 결박으로 큰 날의 심판까지 흑암에 가두셨다." (유 6) 이것은 종종 타르타루스(Tartarus)* 또는 "지하 영역(nether realms)"으로 해석된다. (벧후2:4) 이로써 왜 어떤 천사들은 구류 상태에 있고 다른 천사들은 하늘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인류를 괴롭히는지 설명할 수 있다.
==== 역주:
* Strong's 5250 -- "...cast (them) down to hell..."; "...지옥에 던져...(벧후2:4 개역한글)" 로 번역됨.
* Thayer's Lexicon은 이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함: 1. name of a subterranian region, regarded by the ancient Greeks as the abode of the wicked dead, where they suffer punishment for their evil deeds; it answers to Gehenna of the Jews

그러한 극단적인 처벌은, 사람과 천사 양쪽 모두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죄--단순한 인류의 종족간 혼인보다 더 사악한 것--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최소한, 인간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마귀들의 행위였으며, 사탄은 유전자 컨트롤 및 잡종의 생산으로써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서 창조하신 백성을 약탈하려 했던 것이다.

만약 사탄이 인류를 오염시키는데 성공했더라면, 그는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 사탄을 이기고 인간의 주권을 회복할, 즉 약속된 "여자의 후손(seed of the woman)"이 오는 것을 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창3:15) 사탄이 어떻게든 그 탄생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그는 자신의 파멸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탄은 어느 정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이유로 인해 하나님은 인류를 홍수로 멸망시켰던 것이다.


천사들은 중성인가?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즉시 떠오른다: 천사들이 결혼을 할 수 있는가? 마태복을 22 장 30 절에서 예수님은, 천사들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아니간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로써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물론 이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기는 하지만--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로써 하나님에 대항하여 땅의 여자들과 동거함으로 모반을 해버린 타락한 천사들의 존재를 배제할 수도 없다.

일부는 예수님의 말씀을 천사들은 그들끼리 서로 결혼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그들이 전부 남성이기 때문인가? 혹은 천상의 존재들은 죽지 않으므로 자손 번식의 필요가 없기 때문인가? 오직 땅의 존재들만이 그들의 자녀들로부터 영속성을 구한다. (17) 하지만 천사들이 결혼하여 생식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성적인 행위에 관여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는가? 그들 간에 성행위를 할 수 없다면 인간인 배우자를 통해서 할 가능성은 없는가? 유다서는 이 문제에 관해 상당히 직설적으로 접근한다: 천사들은 그들의 처소를 떠나 다른 색을 따라 간음을 하였다. 그 밖에도 천사들은 먹고, 마시고, 걷고, 말하고, 심지어는 성적인 활동 및 자식을 낳는 등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천사들이 결혼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중성적 존재임을 증명할 수는 없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천사들은 오직 남성으로서만 표현되고 있다. 피니스 드레이크(Finis Drake)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여자들은 인류의 존속이라는 특정한 이유로 인하여 창조되었으며 천사들은 번식하지 않아도 종족의 유지가 가능하므로 모두 남성으로 지음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이다. 천사들은 그 수가 그들이 창조되던 시점에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반면 (히12:22)* 인류는 단 한 쌍으로부터 출발한다." (18)

심지어 성도들이 부활한 몸을 입고 영원히 죽지 않을 다음 세상에서 성도들이 무성의 상태로(sexless)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암시하지 않는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부활 때에 자신의 몸을 갖는다고 가르친다. (고전 15:35-38) 그들의 성이 제거된다고 시사하는 부분은 찾을 수 없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 후에도 그대로 남자였다.


잡히지 않은 마귀들

또 하나의 의문이 제기된다. 창세기 6 장에서 땅의 여자들에게 정욕을 품었던 타락한 천사들이 "영원한 결박으로" 타르타루스(Tartarus)에 갇혀 있다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활동해 오고 있는 마귀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마귀들은 예수님의 사역 당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지금 현재에도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다음과 같은 논거에 따라서, 일부 사람들은 켄트 필폿(Kent Philpott)의 결론에 동의한다:

창세기 6 장 1-4 절을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의 구절들과 연관시켜 해석하려는 시도는, 그것으로써 풀 수 있는 문제들보다 더 많은 문제들을 야기한다. 그러나 베드로후서 2 장 4 절과 유다서 6 절은 반역한 천사들이 "지하의 암흑(nether gloom)"에 갇혀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만약 그들이 죄수로서 갇혀 있다면, 그들은 마귀들로서 신약에서 보여 준 것과 같은 활약을 할 수 없을 것이다. (19)

그러나 필폿(Philpott)은 두 부류의 타락한 천사들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한 부류는 루시퍼와 함께 하늘에서 쫓겨나서 지금까지도 자유롭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무리이고, 다른 한 쪽은 사람의 딸들과 육욕의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2차적으로 타락한 부류이다. 이 두번 째 부류의 영들이 지하에 결박되어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름 아닌 타락한 천사들이며, "사람의 딸들"에 대한 육욕의 죄를 저지름으로 인해 많은 천사들이 하나님에 의해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매우 명백하게 다가온다. 인류의 준절멸(準絶滅) 및 타락한 천사들의 타르타루스 감금은 그들이 저지른 죄의 중대함을 보여준다. 그렇듯 단호한 심판으로써 하나님은 인류를 그들에게 본원적으로 지워진 형벌인 육체적 죽음보다 더 큰 불행에서 구하신 것이다.
 
 
*   *   *
 

註:

l. Matthew Henry's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61).
2. Aurelius Augustine, The City of God (Edinburgh: T. & T. Clark, 1949), Transl. Marcus Dods.
3. Lewis Sperry Chafer, Systematic Theology, Volume 2. (Dallas: Dallas Seminary Press, 1947), p. 23.
4. Kenneth S. Wuest, Word Studies in the Greek N.T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66), Vol. 4, p. 240.
5. Ibid., p. 240.
6. Ibid., p. 241.
7. Unger, Biblical Demonology (Wheaton: Van Kampen Press, 1957), p. 48.
8 W. F. Allbright, From the Stone Age to Christianity (Baltimore: John Hopkins Press, 1940), p. 226.
9. Bemard J. Bamberger, Fallen Angels (Philadelphia: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of America, 1952), p. 53.
10. Philo, DeGigantibus, pp. 58-60.
11. The Ante-Nicene Fathers, Vol. 8, pp. 85 and 273.
12. Ibid., p. 190.
13. Josephus, The Work of Flavius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London: G. G. Rutledge), 1.3.1.
14. Joseph Hall, Contemplations (Otisville, Michigan: Baptist Book Trust, 1976), p. 10.
15. Companion Bible (Oxford University Press). Appendix 26.
16. The Gospel Truth Magazine, Vol. 18, (June 1978), No. 7.
17. Dr. Morgenstem, Hebrew Union College Annual, XIV, 29- 40,114ff.
18. Finis Dake, Annotated R,?ference Bible, p.63.
19. Kent Philpott, A Manual of Demonology and the Occult (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73), pp. 77-78.



그외 또 다른 해석들...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은 누구입니까?


[질문]


“사람이 땅 위에서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창6:1-4)

상기 구절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은 대체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것입니까? 실제 천사라고 하는 자도 있고 또 용사라고도 해석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전통적인 해석은 경건한 셋 계통의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떤 해석을 받아들여야 하는가요?


[답변]

상기 본문은 성경 중에 가장 난해한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신학자와 주석가들 중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당연히 일반 신자들은 어느 해석을 따라야할지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한 사항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악에 빠짐으로써 노아 홍수의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 원인을 밝히는 구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접적 원인이 어떤 비정상적인 결혼에서부터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은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이 과연 누구인지 여부입니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문제가 됩니다. 사람의 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없이 외모만 뛰어나고 세상의 향락을 쫓는 죄인을 상징한다는 데에 큰 의견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과 순서는 당연히 단어, 문장, 문단, 문맥에서의 의미를 먼저 밝힌 후에는 각 개별 책과 성경 전체에 일관된 뜻과 맞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논리 추론에 있어서 연역적, 귀납적 방법이 동시에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문단 안에서의 문자적인 해석이 기독교 교리와 합당한지 역으로도 따져 봐야 합니다. 마치 산수에서 검산을 하는 것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관해선 대표적으로 귀족, 타락한 천사, 네피림, 셋 계열의 경건한 자의 네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각각이 주장하는 바를 문맥에 비추어 재검토하고 또 기독교 교리에 견주어 보도록 합시다. 만약 논리적 흐름이 부자연스럽고 교리에 비추어 부족하거나 모순되는 점이 파생하면 아무래도 그 해석은 미비한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귀족의 자녀

유대교에선 전통적으로 귀족의 자녀들과 천민의 딸들로 봅니다. 이는 문맥상은 물론 성경 전체의 뜻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석입니다. 우선 성경은 사람을 귀족과 천민으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다 같이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로 하나님 안에서 평등할 뿐입니다. 구약시대에 비록 왕이나 귀족들이 있었고 또 사회적 특권을 누리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필요에 의한 인위적 제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엔 모든 인간이 동일할 뿐입니다. 

나아가 본문은 인류를 모두 멸망시켜야할 만큼 죄가 만연된 이유를 밝히는 내용입니다. 그럼 그런 결혼 이전에는 천민에게만 죄가 있거나 많았고, 귀족에게는 죄가 없었거나 적었다는 이상한 뜻이 되어버립니다. 귀족이 천민과 결혼하는 것 자체로도 죄가 되지 않는데 그로 인해 전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면 성경은 이상한 사교(邪敎)의 경전으로, 성경의 하나님은 어리석은 인간의 상식조차 무시하는 독재자로 전락할 뿐입니다. 

타락한 천사

일부 개신교단과 유대랍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타락한 천사 같은 영적 존재로 해석합니다. 천사가 인간 여성과 성적 관계를 가졌고 그 사이에 네피림이라는 거인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문자적 해석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몇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우선 구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대구적(對句的)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대표적 예로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욥1:6)나,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 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단3:25)를 듭니다. 이 구절들에선 하나님의 아들들 혹은 신들의 아들은 분명 천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단 혹은 사람과 대조시킨  표현인데 본문에서도 같은 용례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또 영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누리던 아침의 아들 계명성, 루시퍼 천사 즉, 사탄은 스스로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타락하는 바람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습니다.(겔28장, 사14장) 이때 사탄은 수많은 부하 천사들을 끌고 나왔는데 바로 이 타락한 천사들 중 일부가 사람의 딸들과 관계를 맺어 네피림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 앞에 너무나 큰 죄인지라 하나님께 벌을 받아 드러나게 활동을 못하고 현재 구덩이에 갇혀 있다고 봅니다.(눅8:31, 계9:2) 그러다 마지막 대환난 때에 옥에서 풀려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은 자들을 괴롭힌다고(계9:3-11) 해석합니다. 

그러나 우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사람들, 특별히 하나님과 계약 관계에 있는 경건한 자들을 가리키는 용례로도 종종 등장합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틀을 밀지 말라.”(신14:1)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신32:5) 이스라엘을 두고 여호와 혹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던들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시73:15) 이 시편의 저자는 세상에 악인이 형통하니까 하나님의 공의가 굽는 것 같아 보여 잠시 믿음에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주위에 발설했더라면 온전한 믿음의 세대들에게 크게 잘못을 범할 뻔 했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분명히 “주의 아들들”은 악인들에 동조해서 배교했던 자들(10절)과 대조되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심지어 인간을 신이라고 칭한 경우마저 있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시82:6) 본 시편은 재판장들이 공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 주제로서 당시 재판장들을 높여서 신, 지존자의 아들 등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이에 대하여는 성경문답 사이트 #116 “요10:33-36의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의 글을 참조바랍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구약성경에선 오히려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로 더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또 천사는 영적 존재로 육체적 몸이 없기에 인간 여자와 성적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인간과 유사한 육체로 나타나긴 해도 인간에게 하나님 내지는 사탄의 뜻을 계시해주는 것이 목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천사로 신자를 섬기게 하거나(히1;14), 욥의 경우에서 보듯이 악한 천사로 신자의 믿음을 성숙시키기 위한 연단을 조성하는 일 두 가지 외에는 신자에게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합니다. 만에 하나 인간과 육체적 교섭이 가능하다 쳐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사탄의 졸개를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할 리도 없고, 또 그렇게 표현한 적도 전혀 없습니다.   

만약 사탄의 부하 천사와 인간의 성관계가 가능했다면, 선악과 타락 사건에서 이브와 뱀이 성관계를 갖는 바람에 죄가 들어왔다는 이단의 주장도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 비슷한 종류의 사탄 숭배 종교에게도 타당성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의 의미가 축소, 왜곡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타락한) 천사와 마리아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고 예수님은 그 자녀라는 주장까지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타락한 천사가 인간과 성관계를 맺어 노아 홍수 심판의 원인이 되었다면 성경 전체의 구속사가 이상하게 바뀌거나 새로운 해석이 첨가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성경은 천사의 타락 역사가 되거나, 인간의 죄악이 천사로부터, 그것도 생물학적 유전으로 온 것이  됩니다. 또 천사가 사람의 딸을 취할 때에 인간은 도무지 거역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타락에 대한 책임이 인간에게는 없어집니다. 

성경은 죄의 발단을 아담이 사탄의 꾐에 넘어가 스스로 하나님을 거역한 것에 둡니다. 또 그 결과로 영혼이 타락되었고 그 후손 또한 모두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상태로 태어나 진정으로 그분을 경배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구속의 방안도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영이 타락된 인간의 영을 새롭게 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네피림   

장부(丈夫)요, 용사요(싸움에 능한 자), 유명한 자들이 힘과 부와 명성으로 자기 마음에 드는 모든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다고 해석합니다. 또 이로 인해서 일부일처제가 붕괴되고 일부다처제가 성행했으며 그 여파로 결혼을 못하게 된 자들 사이에 동성애가 초래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적문란이 극해 달했던 노아홍수 당시의 사회상을 고발하는 단적인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문맥상 하나님의 아들, 네피림, 장부, 용사, 유명한 자들 모두가 일관되게 같은 사람들을 지칭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4절에서 네피림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문법적으로도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그 타당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 주장을 가장 확실하게 변증해주어야 할 구절이 오히려 그 반대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에도 나와 있듯이 네피림이 먼저 있었고 그 후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해서 용사를 낳았습니다. 그 용어들이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치면 이 구절은 결국 이런 말이 됩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네피림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네피림이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 즉) 네피림이었더라.” 성경이 네피림이 이미 있었는데 다시 네피림이 태어난 연유를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면 이전의 네피림보다 더 강력한 네피림이 나타났다는 뜻을 여실하게 드러내어야만 합니다.   

다시 잘 따져 봅시다. 이 결혼 사건이 있기 전에 이미 네피림이 있었습니다. 그럼 이전에는 네피림은 네피림끼리만 결혼하다가 이제는 네피림이 아닌 여자들과도 결혼했는데 여전히 네피림이 나왔다는 뜻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거인 족속이 소인 족속, 아니면 최소한 신체 크기에 상관없이 미녀들만 골라 결혼했는데 여전히 거인 족속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우생학적 실험 내지 유전자 변형을 이때에 이미 시도한 셈입니다.  

무엇보다 본문은 죄악이 관영하여 전 인류가 심판을 받아야만 할 연유를 밝히는 내용입니다. 네피림이 이미 있었다면 그들은 벌써부터 외모, 신체에서 출중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역시 외모, 신체가 뛰어난 여자들을 취해 아내로 삼은 것이 심판을 부를 만한 큰 죄가 될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으로선 당연한 일이자 어찌 보면 선한 일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잘못은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질서인 일부일처제를 붕괴시키고 일부다처제를 시행했으며 그 부작용으로 동성애를 만들어낸 죄를 지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폭력성과 일부다처제의 기원은 창세기 4장의 가인의 족보 가운데 라멕의 검가에서 이미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또 라멕의 아내들의 이름의 뜻이 ‘아다’는 ‘꾸미는 자’를, ‘씰라’는 ‘딸랑거리는 자’를 말하듯이 세속적인 외모와 조건을 중시하는 풍조도 이미 성행했습니다. 

성경이 본문에 와서 다시 그런 뜻을 기록했다면 일부다처제가 더 번창하게 되었다는 설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위반한 성적 죄악을 가장 중요하고도 대표적인 죄의 예로 다시 들었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적 죄악을 유독 강조하게 되면 당시에도 노아 가족 외에 일부일처로 사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며, 결혼 못한 싱글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인류가 몽땅 심판을 받을만한 원인으론 아무래도 부족합니다. 

또 외모와 신체만 중시하는 네피림은 사실상 이미 죄 가운데 있었던 셈입니다. 말하자면 죄인이 다시 죄를 짓는다고 해서, 아무리 큰 죄라도 그 새로 지은 죄 때문에 심판하신다는 것은 아무래도 하나님의 심판 원리에 대한 불합리한 설명이 됩니다. 나아가 문맥의 흐름 상 “사람의 딸들”이 죄인의 대명사로 표현된 것은 확실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와 반대의 뜻으로 해석해야만 자연스럽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죄인의 아들들이 죄인의 딸들과 결혼하여 죄인들을 낳았기에” 노아 홍수로 멸하기로 했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당신을 경외하는 자를 통해서만 다스립니다. 구원과 심판의 원리도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먼저 적용됩니다. 죄악에 빠진 자는 그 불의하고 상실한 마음에 그냥 버려두시는 것이 심판의 원칙입니다. 아담의 원죄로 인해 모든 피조세계는 이미 하나님의 저주를 크게 받았습니다. 가인이 친동생을 살인했어도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고 단지 알고만 있다는 이유로 보호해주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 했습니다. 즉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여 구원한 백성들로 이 땅을 다스리려는 뜻이었습니다. 처음 창조 때에도 하나님의 뜻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고 당신 뜻에 순종하는 자녀를 통해 이 땅을 당신 대신에 거룩하게 다스리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당신의 백성에게 집중되어 있고 그들을 통해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한 마디로 당신이 택하여 당신을 아는 자들까지 우상종교와 간음하여 철두철미하게 타락해가는 과정을 일관되게 밝혀 놓은 책입니다. 예수님이 반드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본문의 하나님의 아들이 네피림이라면 이미 죄에 완전히 빠져 있는 특정 종족의 인간이 성적 타락을 더 심하게 했기에 전 인류를 몽땅 물로 심판하기로 했다는 제한적인 뜻이 됩니다. 

노아 가족을 구원해주신 이유를 역으로 따지면 자연히 다른 이들을 심판한 원인도 알 수 있습니다. 노아 가문은 당대에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은 유일한 의인들이었습니다. 그럼 심판의 원인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아무도 하나님을 믿기는커녕 찾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본문은 반드시 이 땅에 노아를 제외하고는 의로운 자들이 한 명도 없었던 이유를 밝혀주는 기록이어야만 합니다.   

셋 계열의 하나님을 아는 경건한 자

상기의 세 의견들을 분석해보았더니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경건한 자들로 해석하는 것이 그 의미의 흐름상 가장 자연스럽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우선 성경의 기록된 순서에도 반드시 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무작위순이나, 저자 혹은 편집자의 개인적 편의, 선호, 사상에 따라 배열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성령이 영감하여 순서는 물론 일점일획까지 하나님의 뜻이 반영된 무오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본문이 속해 있는 앞뒤 순서를 보십시오. 앞에는 셋 계열의 자손을 밝힌 노아의 족보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직전에는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바로 뒤에는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심판을 하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합니다. 요컨대 본문은 심판이 있게 된 까닭을 노아 계보와 연결시켜서 말씀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창세기가 가인 계보와 셋의 계보를 분명히 구분시킨 의미를 감안해야 합니다. 가인의 계보는 알다시피 물질문명을 추구하고 욕심껏 세속의 쾌락을 탐하는 자들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채 스스로 세상 주인이 되어 인간의 능력으로 먹고 마시는 것에만 안락과 형통을 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성경은 셋 계보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5,26) 

하나님이 비록 아담과 이브에게 원죄의 대가로 벌을 내렸지만 구원의 은혜를 받을 약속의 씨를 아벨과 셋을 통해 심어주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그 씨를 통해 여자의 후손 즉 예수님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셋 족보에는 죄악의 기록은 없고 두 가지 특징 즉, 나고 죽었다는 것과 에녹의 승천기록이 나타납니다. 인간에게 죄의 삯은 사망임을 보여주되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영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기준은 인간이 저지른 죄의 범과보다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느냐에만 달렸다는 뜻입니다.    

그런 약속의 계보에 이어서 본문이 나타나는데 처음 시작한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사람 즉, 약속의 씨와 약속 밖의 사람을 망라하여 인류 전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홍수심판의 원인은 오직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천사가 개입할 여지는 아예 없습니다. 

또 3절에서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라고 합니다. 그럼 심판 전에는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 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영을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심판의 직접적인 원인이 하나님의 신이 함께 했던 사람들로 인해 생겼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네피림이 같은 네피림 내지 그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결혼하여 죄가 더 확대되었기에 심판이 왔다면 이전의 네피림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 또한 아무래도 부자연스런 해석입니다. 

다시 성경에 기록된 의미의 흐름을 따져 봅시다. 본문 앞에는 하나님을 아는 경건한 자들이, 그것도 비록 죽음을 맞기 했지만 아주 오래 살았다고 합니다. 또 그 중에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하늘로 데리고 간 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나아가 장수했으므로 당연히 땅 위에 사람들이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뒤에는 하나님은 사람 지은 것까지 한탄하시고 경건한 자들의 후손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다 멸망시킬 결단을 했습니다. 

그럼 중간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전체적으로 그 논리상 자연스런 흐름이 되겠습니까? 그 경건했던 약속의 씨들까지 심판해야만 하는 이유를 반드시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뜻의 흐름은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경건한 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네피림들로 인해 일부다처제가 생기고 동성애 죄악까지 번창하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했다.” 아무리 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태초부터 영원토록 인간의 죄악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이 모이는 곳에는 고대나 지금이나,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죄가 들끓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당신을 진심으로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기독교를 믿지 않았다는 종교적 배타성이 그 이유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해 하나님을 등진 데서 모든 도덕적 죄악이 발발하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도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인간의 자격, 조건, 공적 하나 없이 오히려 죄악 중에 있었음에도 누구라도 십자가 은혜 앞에 나오는 자는 구원해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심판의 원인이 죄악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무릎 꿇지 않았다는 것 아닙니까? 

이는 신구약 성경을 통 털어 일관된 원리입니다. 본문에서도 모든 사람이 육체가 되었기에 심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육체가 생물학적 Body 를 말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사건 전에도 사람은 육체를 가졌습니다.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신이 떠난 상태 즉, 하나님을 자신의 영혼에서 지워버리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순간 육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육체가 되었기에 남은 것은 심판뿐입니다. 

본문을 해석할 때에 자꾸만 결혼이라는 사건과 그에서 태어난 후손들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의 비정상적인 결혼이 심판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나아가 그 후손도 그 결혼의 영향을 받아 천하에 포악한 죄인이 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연히 이 특정 결혼사건을 구체적 논리적으로 해명해야겠다는 욕심이 앞서게 되며 자연히 하나님의 아들, 결혼, 장부, 네피림, 유명한 자 같은 단어의 문자적 해석에 무리하게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차 강조하듯이 죄의 출발은 하나님을 배역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도   이미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가 그 자리에 서겠다고 의도적으로 불순종의 마음을 먹은 것이 행동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의 하나님의 아들도 이미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한 죄가 먼저 생긴 결과로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것입니다.

분문에서 아들과 딸이라고 해서 나머지 반대쪽 성(性)을 가진 사람은 무죄하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결혼을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딸이라고 하지 않고 구태여 아들이라고 남성을 강조한 이유는 우선 천사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고, 또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르면 남자에게 권위와 책임이 있으며, 나아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라는 계명대로 결혼의 주도권이 남자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장부, 네피림이라는 말에도 도가 넘치는 흥미를 보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럼 자칫 고대에는 아주 큰 거인족속이 있었는데, 그것도 가인의 후예들이 그런 반면에 셋의 후예들은 소인족속이었다는 이상한 뜻이 되어버립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2,33)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서 신장이 장대한 대장부 네피림 후손을 보았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이 거인이었고 유대인들은 왜소했다는 역사적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흔히 “메뚜기 신드롬”이라 불리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를 낮추어 본 것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장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탐꾼들이 겁에 질려 가나안 족속을 과대 포장하여 묘사한 것입니다. 

또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름대로의 이유는 가나안은 이미 철기 문명으로 개화되었고 수많은 전쟁 경험으로 무기체계와 군대가 잘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사백년간 애굽에서 막노동 노예 생활만 하여 변변한 무기 하나 없고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출17장)을 제외하고는 전투 경험도 없었습니다. 누더기를 걸친 거지 떼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연히 가나안 족속이 대장부 같고 신장도 더 커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장대했다고 해도 거인과 소인을 나눌 만큼의 차이는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도 네피림, 장부, 용사, 유명한 자 등을 꼭 거인족속과 연결시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네피림은 가인의 후손들로서 이미 창검을 소지했고, 일부다처제를 시행했고, 제 기분 내키는 대로 욕정을 채우며 세상 쾌락에 물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세상을 움직이고 인간을 높이는 능력이 재물과 권력뿐이었는데 그 둘을 독점한 것입니다. 자연히 커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거인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육신의 크기가 본문의 해석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땅이 전부인줄 알고 눈에 좋고 아름답게 보이는 대로만 살았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의 풍요와 안락만 구했습니다. 이브가 원죄를 범했던 이유대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들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서로 다투고 죽여 가며 차지했습니다. 또 그런 죄는 가인에서 발단되어 라멕을 거쳐 그 계보 내에선 이미 번질 대로 번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셋 계보 사람들도 가인 계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 부러워진 것입니다. 차츰 그들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닮아가고 또 혼합되어서 결국에는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두 족속의 결혼으로 인해 그런 타락은 더 급속도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급기야는 이 지면에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자는 노아 가문 밖에 안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말씀드리지만 본문에서 무두가 동의하는 바는 노아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할 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상기 넷의 해석을 각기 대입해도 어쨌든 결과적으로 모든 인간이 완전히 타락했다고 여기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귀족과 천사와 네피림으로 보는 경우는 상기에서 진술한 각각의 구체적인 논리적 신학적 결함은 제쳐두고라도 이미 하나님과 등을 진 존재들이 특정한 결혼을 했고 또 그로 생긴 후손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을 결심했었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에 셋의 후손으로 보는 입장은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는 자들마저 완전히 타락했기에 심판을 했다는 뜻이 됩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문맥과 성경이 말하는 바와 더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해석인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7/10/2009



운영자 (2009-07-11 03:50:24) 
온누리 목사님
노아 훙수 전에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기 보다는
인간, 세상, 물질만 쫓았고 성적 타락이 극에 달해 심판을 받았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네피림으로 해석하는 데는 저로선 선뜻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목사님께서 기존의 해석을 따르는 자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마침 아가페님께서 댓글로 저의 의견을 물어 오셨기에 제 생각을 밝혀 보았습니다.
별다른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곳의 기독교서점에선 최근의 대중적인 베스트셀러 말고는 잘 구하지 못하고 별도 주문을 해야 하는 불편이 있습니다.
안 그래도 목사님이 추천하신 그 책을 저도 읽어보려고 주문을 했는데
이곳 서점이 한국까지 연락했는데도 잘 찾지 못햇습니다.
혹시 어디에서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
사라의 웃음 (2013-03-14 06:15:51) 
네피림, 참 오래도록 궁금햇었고요 또 초신자 시절 읽었던 어떤 책의 영향으로 그런 족속이 있었나 보다 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표현했던 그 네피림의 자손들이라는 대목을 읽을 때에도 정말 거인족속, 마치 신화에서나 나옴직한 거대한 짐승같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였나 인식이 되어지곤 했었습니다.

오늘 하나 하나 되짚으며 설명해 주심에 너무도 쉬이 이해가 가고 그간 고정관념처럼 새겨져 있던 네피림의 외모, 마치 야수와 같은 그런 외모도 모두 지워지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의 아들들이 눈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로와짐에 탐스럽기만한 여러것들에게 맘 빼앗김이 어떠한 심판에 이르게됨의 의미를 상세히 배우게 되어 참 감사하고 또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들의 말씀의 사모와 그 중심에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사랑해야함과 세상의 부귀 영화에 맘 빼앗기지 않고 오로지 위에서 부어주시는 그 사랑이 복에 겨워 그 사랑에 감격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자로 서 있길 소원하며 기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