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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자료 모음

[ # 스올이란? # 지옥이란? ] - 잘못 번역된 4가지 원어

지옥이란? 스올이란?음부란?


잘못 번역된 4가지 원어



1. 구약성경에서 “음부”로 번역된 “스올”

구약성경에 65번 나오는 “sheol(스올)”이라는 히브리어는 “보이지 않는 세계”(the unseen world)를 뜻하는 말인데, 한글 성경에는 주로 “음부”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어서, “저승”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마치 죽은 사람의 영혼이 가는 곳처럼 느껴진다.

17세기에 번역된 흠정역 영어 성경을 보면, 번역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서 31번은 무덤으로, 31번은 지옥으로, 3번은 구덩이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로운 연구를 거치는 동안, “지옥”으로 번역된 “스올”이 문맥과 전체적인 의미에 맞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자, 새국제역(NIV)은 “지옥” 대신에 “무덤”으로 번역함으로써 잘못된 번역을 수정하였다. “음부”로 번역된 “스올”이란 말은 “무덤”이란 뜻으로 이해해야만 된다는 사실이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에서 분명하게 밝혀진다. “스올”을 지옥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다음에 소개하는 야곱, 욥, 다윗과 같은 의인들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갔다는 엉뚱한 결론이 생기기 때문이다;

1) 신실하게 산 야곱도 자신이 죽으면 갈 곳이 스올이라고 하였다 : 창 37:35 ; 42:38,44
2) 의로운 욥도 죽으면 스올로 내려간다고 하였다 : 욥 14:13 ; 17:13~16
3) 다윗도 죽으면 갈 곳이 스올이라고 하였다 : 시편 18:4,5 ; 30:3

2. 신약성경에서 지옥이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3가지

신약성경에는 지옥(hell)으로 번역된 말이 모두 23번 나오는데, 그 가운데 10번은 老溝?붉(hades), 12번은 “게헨나”(gehenna), 그리고 나머지 1번은 “타르타루스”(tartarus)라는 헬라어가 지옥으로 번역되었다.

A) 신약성경에서의 “음부”인 “하데스”

“하데스”는 구약성경의 “스올”에 해당하는 말이다. 소아시아의 무덤에 있는 묘비를 보면, 지금도 묘비 위에 기록된 “ooo의 무덤”이라는 글에서 “하데스”라는 단어가 “무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종종 “지옥”이라고 번역된 “하데스”는 죽은 악인들의 영혼이 불타는 지옥이 아니라, 죽으면 우리 모두가 가게 되는 “무덤”이나 “죽음” 자체를 뜻한다는 사실을 성경의 본문만 주의깊게 읽어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20세기에 번역된 성경들은 “하데스”를 “무덤” 또는 원어 그대로 “하데스”로 표현함으로써, “하데스”를 “지옥”으로 번역할 때에 생기는 문맥상, 그리고 신학상의 혼란을 피하고 있다.

B) 어두운 구덩이 - “타르타루스”

지옥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는 또 다른 헬라어인 “타르타루스”의 원래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타르타루스)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매.” 베드로후서 2:4. 베드로 후서 2장에서는 “지옥에 던져”로 번역된 “타르타루스”가 유다서에서는 “흑암”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타르타루스, a dark abyss,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셨으며.” 유다서 6절. 베드로후서 2장에서는 지옥으로 번역되었던 “타르타루스”가, 유다서에서는 흑암(어두운 구덩이)로 번역됨으로써,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범죄한 악한 천사들을 심판의 날까지 가두어 놓은 이 흑암의 구렁텅이는 어디일까?

요한계시록에 그 대답이 나와 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사단과 악한 천사들이 하늘에서 범죄하여 지구로 쫓겨난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는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지구)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 요한계시록 12:7~9. 그러므로 하나님께 범죄한 사단과 악한 천사들이 던져져서 심판의 날까지 흑암 가운데 가두워진 곳은 바로 지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기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재확인 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천년기가 시작되면서, 한 천사가 사단과 그의 천사들을 천년 동안 “무저갱”(abyss, 어두운 구덩이)에 결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무저갱”(abyss, 어두운 구덩이)도 “지구”를 뜻한다는 사실을 앞에서 이미 배웠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2:4에 “지옥”으로 번역되었고, 유다서 6절에 “흑암”(abyss)로 번역된 “타르타루스”는 지구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C) 신약성경의 지옥 - “게헨나”

신약성경에서 게헨나(gehenna)는 모두 12번 “지옥”이란 말로 번역됨으로써, 가장 많은 횟수를 차지하고 있다. 게헨나는 12번 중에서 단 한번(약 3:6)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께서 친히 사용하셨던 특이한 표현이다.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게헨나)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마가복음 9:48. 게헨나는 히브리어로 골짜기를 뜻하는 “게”(ge)와 인명인 “힌놈”(Hinnom)이 합성되어 생긴 “힌놈의 골짜기”란 뜻의 지명인데, 구약성경에는 “힌놈의 골짜기”라는 이름으로 여러번 등장한다(여호수아 18:16).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게헨나는 실제적인 지옥이 아니라, 예루살렘 남쪽 비탈 아래의 계곡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힌놈의 골짜기”(gehenna)는 저주와 살륙을 의미하는 장소였다. 구약시대에는 그곳에서 자식들을 몰렉신에게 불살라 제사하였다. “아하스가 ...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 그 자녀를 불사르고.” 역대하 28:1~3.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골짜기가 장차 살륙의 골짜기로 불려지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랐나니 ...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예레미야 7:31~33.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게헨나 곧, 힌놈의 골짜기라고 불리웠던 예루살렘 성 밖의 남쪽 골짜기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장차 메시야를 거절하는 악인들이 최후의 형벌을 받게 될 장소로 상징되었다. 예루살렘 성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을 일종의 쓰레기 처리장으로 사용하였다. 그 골짜기에는 항상 처형당한 죄인의 시체와 죽은 동물의 시체와 쓰레기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뿌연 연기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그 파괴적인 화염 속으로 어떤 것이 떨어지게 되면, 순식간에 구더기에 덮혀서 없어져 버렸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아신 예수께서는 악인들이 최후의 심판날에 “게헨나” 즉 “힌놈의 골짜기”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성벽 아래서 전개되는 완전한 파멸의 장면을 가리키면서, 예수께서는 지옥불의 완전한 파괴에 대한 예증을 들었던 것이다. 구더기와 쥐들이 계속해서 각종 동물의 시체들을 뜯어먹는 장면을 지적하시면서, 지옥의 완전한 멸망의 모습을 설명하셨던 것이다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게헨나, 힌놈의 골짜기)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마가복음 9:48. 이 성경절에서 지옥이라고 번역된 “게헨나”가 유황불이 영원히 불타고 있는 진짜 지옥이라면, 어떻게 구더기가 그곳에서 죽지 않고 영원토록 살 수 있겠는가? “거기(지옥)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나오는 구더기들을 사람의 혼(soul)으로 해석하는데, 그러한 해석은 예수님의 의도와 일치하는가? 결코 아니다. 성경 전체에서 구더기를 사람의 혼으로 표현하거나 상징한 곳이 있는가? 단 한군데도 없다. 구더기와 지옥의 유황불은 결코 함께 어울릴 수 없는 단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쓰레기와 죽은 시체를 태우는 불길이 밤낮 타오르던 게헨나(힌놈의 골짜기)를 가리키시면서, 마지막 심판날에 악인들을 태울 불길을 “영영한 불”로 표현하셨던 것이다(마 25:41). “영영한 불” 이란 영원토록 중단되지 않고 타는 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로 인한 결과가 영원할 것이라는 뜻이다. 즉, 영원한 멸망을 뜻한다.

“게헨나”는 신약 성경에서 모두 지옥이란 말로 번역되었지만(마 5:22,29,30 ;10:28 ; 23;33), 사람이 죽은 뒤 몸을 떠난 혼백이 영원토록 불 가운데서 고통받는 곳을 뜻한 경우는 단 한번도 없다. 그 대신, 장차 있을 재림과 연관된 심판의 때에 육신이 유황불에 소멸되는 곳으로 묘사되었다(마 5:22 ; 25:41 ; 마 10:28 ; 5:29,30).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게헨나) 불에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5:22. “온 몸이 지옥(게헨나)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태복음 5:30. 



또 다른 주장의 내용 


스올이란 단어가 주는 내용에 따른 분석 


 

이 승 구 박 사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2.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 좀더 성경적 용례에 충실하게 된 예


2-1. 주해의 과정에 좀더 깊이 주의하면서 작업함으로써 후크마가 용어 사용에 있어서도 좀더 성경적인 용례에 접근해 간 대표적인 경우가 '스올'( , She'ol)이란 용어가 사용된 용례와 관련된 그의 논의이다. 이전에 벌코프는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3가지 용례를 가진다고 했었다. 그것은 (1) 죽음의 상태, (2) 무덤, (3) 그리고 지옥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후크마는 "스올이 죽음의 상태나 무덤을 의미한다는 것은 잘 성립될 수 있으나 지옥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의심스럽?quot;고 잘 지적하고(The Future, p. 96), 왜 자신이 그렇게 말하는지를 벌코프가 인용하고 있는 성구들에 대한 주해를 통해 밝히고 있는 것이다. 벌코프가 스올이 지옥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인용하는 각 구절에 대한 후크마의 논의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1) "악[한 자들]이 스올로 들어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러하리라"는 시편 9 : 17에 대해서 후크마는 여기서 시편 기자가 이 사악한 열방들( , gyim)의 모든 사람들이 당할 영원한 형벌을 예언하고 있다고 믿기 어렵다고 하면서, 이 때 스올을 이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인 죽은 자들의 영역으로 번역하면 이 구절의 의미가 아주 잘 살아난다고 한다. 즉, 시편 기자는 불경건한 민족들이 비록 지금은 자신들의 힘을 자랑하고 있어도 죽음으로 깨끗이 제거되어 버리리라고 말한다는 것이다(The Future, pp. 96f.).

 

(2) "사망이 그들 위에 임하여 그들을 산채로 스올에 내려가게 할지어다"는 시편 55:15에 대해서도 병행법에 비추어 볼 때 이는 갑작스럽게 죽을 것을 의미하지, 반드시 영원한 형벌을 함의하는 것이 아님을 잘 드러내고 있다(The Future, p. 97).

(3) "지혜로운 자의 길은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으므로[즉, 위로 향하여 생명에 이르므로]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는 잠언 15:24도 음부라는 말이 표현하는 죽음과 생명의 대조를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해석한다(The Future, p. 97).

이로부터 후크마는 "스올이 영원한 형벌의 장소를 지칭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수립되지 않았다"고 결론 짖는다(The Future, p. 97). 그러나 악한 자들의 사후 운명과 경건한 자들의 사후 운명이 같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구약에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음을, 즉 경건한 자들에 대한 부활의 약속이 있음을 시편 49:14-15("양떼 같이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죽음이 저희의 목자가 될 것이라,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부터 구속하시리니, 이는 그가 나를 영접하시리로다"), 시편 16 : 10("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17 : 15("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그리고 시편 73 : 24("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등의 말씀으로 확증해 보려고 한다(The Future, pp. 97-99).

이처럼 후크마는 구약에서 음부( ,She'ol)라는 용어가 과연 구체적인 문맥 가운데서 어떤 용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주해적으로 잘 살피는 과정에서 이전의 쉐드나 벌코프의 스올이 지옥이란 뜻으로 사용된 경우도 있다는 견해를 반박하며 수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구체적인 신학함이 어떻게 좀더 바르고 깊이 있는 주해에 근거해야 하는가를 잘 나타내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주해는 모든 신학함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의의 과정 중에서 아직도 옛 견해에 대한 못내 아쉬움 같은 것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자면, 구약에서 이미 부활에 대한 확신이 나타나고 있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후크마는 "경건한 자들이 이 영역에서 구출되는 반면에 경건치 못한 자들이 스올에 계속 남아 있다는 의미에서" "스올이 악인들을 위한 형벌의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는 최소한의 힌트를 보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The Future, p. 97, n. 29). 그러나 경건한 자들의 부활은 결국 죽음의 영역인 스올로부터의 부활이라고 본다면 여기사 형벌의 장소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신약에서의 하데스( , Hades)의 용법을 검토하면서 후크마는 신약에서도 구약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사망 시에 멸절되지 않고 하데스( , Hades)나 아니면 때때로 낙원(Paradise) 또는 아브라함의 품(Abraham's bosom)으로 불린 지복의 장소에서 계속해서 존재한다고 가르친다"고 잘 지적하고 있다(The Future, p. 99). 또한 신약에서도 하데스( , Hades)는 일반적으로 죽은 자들의 영역을 지칭한다고 잘 지적한다(The Future, p. 99).

그런데 이 '하데스'( )란 단어가 단지 죽은 자들의 영역을 지칭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중간 상태 속에서의 고통의 장소를 가리키고 있는 경우로서 사용되고 있는 예로 후크마는 누가복음 16: 19-31의 비유를 언급한다(p. 100). 이에 대한 후크마의 논의도 조심스러워 그는 최종 상태에서의 형벌의 장소를 가리키는 신약의 용어인 '게헨나'( , Gehenna), 즉 지옥과 이 부자가 고통 당하고 있는 곳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는 아주 분명하게 "하데스와 연관된 고통과 아브라함의 품과 연관되어 있는 위안은 이 비유에서 묘사되고 있듯이, 중간상태에 국한되어 일어난다는 것이다"고 말하는 것이다(p. 101). 그러나 그는 아쉽게도 그가 중간 상태에서의 악한 자들의 고통의 장소인 '하데스'( , Hades)와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 , Gehenna)의 관계를 정확히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가 드러내는 입장으로 볼 때 그는 아마도 최후의 심판 이후에 지옥 형벌이 주어지기까지 악한 자들이 형벌을 당하고 있는 곳이 '하데스'라고 보는 요아킴 예레미아스나 윌리엄 헨드릭슨의 견해에와 같은 견해를 가진 듯하다. 그러나 그 자신의 명확한 진술은 주어져 있지 않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견해들은 신약에서의 헤데스의 일반적인 용례와 비추어서 좀 낯선 한 구절, 그것도 해석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한 구절에 근거해 제시한 논의라는 문제점이 있다.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누가복음 16:19-31의 비유의 근본적 의도에 유의하면서 여기서 중간상태에 대한 가르침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좀더 명확한 신약의 구절들에서 그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하는 래드 등의 견해와 깊이 있게 비교하며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들에 대한 보다 깊은 논의와 고찰이 후크마 이후에 개혁신학을 하는 이들에게 부과된 신학적 과제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이와 연관해서 중간 상태가 없다고 부인하는 반 데 류[G. Der Leeuw, 1890-1950]나 알트하우스[Paul Althaus, 1888-1966]에 반해서 고전적 개혁신학자들과 함께 후크마가 성경적 중간 상태 개념을 잘 설명해 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한가지 언급을 해야 할 일 이 있다. 그것은 주의해서 잘 살펴보지 않으면 우리말 역본이 줄 수 있는 한 가지 오해에 대한 것이다. 먼저 우리말 역본에 있는 다음 같은 말을 보라.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답변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몇 가지 사실을 인정한다. 성경은 중간 상태에 관해 거의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성경이 중간 상태에 관해 기꺼이 말하고 있는 것도 육체의 부활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인간의 미래에 관한 종말론적 메시지에 연관되어 부차적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우리는 또한 중간 상태에 관해 인간학적 묘사나 이론적 설명을 신약성경이 거의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개혁주의 종말론』, pp. 131f.).

이 부분만 문맥에 대한 고려 없이 읽으면 마치 후크마가 중간 상태를 부인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필자 자신도 우리말 역본에 이 부분을 읽을 때 그런 인상을 받아서 영어 원본을 읽을 때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서 상세히 비교하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이 부분 뒤에 후크마의 다음과 같은 말을 잘 번역해서 후크마가 중간 상태를 부인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말 역본도 잘 전달한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 인간은 파멸되는 것이 아니며, 신자는 결코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충분히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성경의 증거들이 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개혁주의 종말론』, p. 132). 그러나 사실 위에서 인용한 부분도 그 원문은 우리가 오해하도록 진술되어 있지는 않다. 이것을 보여 주기 위해 그 부분을 다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이런 반론들에 대한 대답에서 성경은 중간상태에 대해서 아주 적게 말하고 있다는 것과 성경이 중간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몸에 부활이라는 사람의 미래의 관한 성경의 주된 종말론적 메시지를 말하면서 부가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p. 94).

그러므로 후크마는 다른 고전적 개혁신학자들과 함께 그의 논의의 결론에서나 그 논의에 과정에서도 중간 상태를 부인하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또 다른 내용 2 


re: 왜 성경은 지옥을 게헨나, 하데스, 스올 등등의 다른 단어로 표현하나요?

jason1717
답변채택률25%
2004.10.20 17:33

질문자 인사

<<>>

먼저 구약성경에 65번 쓰여진 '스올'(sheol)이라는 히브리어부터 보겠습니다.
'스올'은 '보이지 않는 세계'(the unseen world)를 뜻하는 말인데,
우리 말 성경에는 주로 '음부'(陰府)로 번역되어, 죽은 사람의 영혼이 가는 곳으로 
잘못 생각하는 '저승'을 연상시킵니다.
17세기 영어 번역본인 흠정역(1611, KJV)에는 같은 말을 자신들의 주관에 따라
31번은 '무덤'으로, 31번은 '지옥'으로, 3번은 '구덩이'로 번역하여 혼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더 많은 연구를 거쳐 번역된 영어 성경들은
'지옥'이 문맥과 신학에 맞지 않게 되자 미국 표준역(ASV)의 경우 대부분
원어인 '스올'을 그대로 썼고, 새국제역(NIV)은 대부분 '지옥' 대신 '무덤'으로 번역하여
신학적 양심을 되찾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을 읽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음부'로 번역된 '스올'이란 곳은
사람이 죽으면 의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가게 마련인 유택(幽宅), 곧 '무덤'을 뜻했음을
욥기 7:9, 시편 30:3, 전도서 9:10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추가적인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 신실하게 산 야곱도 자신이 죽으면 갈 곳이라고 했고(창 37:35, 42:38, 44:29,31)
* 의로운 욥도 죽으면 그리로 내려간다고 했으며(욥 14:13, 17:13-16),
* 하나님이 사랑하시던 다윗도 죽으면 갈 곳으로 기대했고(시 18:4-5, 30:3, 49:15),
* 선한 히스기야 왕도 그리로 간다고 믿얻을 뿐 아니라(사 38:10),
* 예수 그리스도도 돌아가신 뒤 잠시 머무실 곳도 음부라고 예언되었습니다(시 16:10 -> 행 2:27, 31).

* 또한 반역한 무리들도 음부에 삼키웠다고 했고(민 16:33)
* 애굽 사람과 앗시리아 사람도 죽으면 가는 곳이고(겔 32:18-23)
* 바벨론 왕도 가고(사 14:9)
* 결국은 모든 사람, 모든 악인이 가는 곳입니다(시 9:17, 계 20:13).

[구약 성경에서의 '스올']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월터(Ralph Walter)는,
"구약 성경에 쓰여진 '스올'(sheol)에 대한 거의 모든 묘사는 '무덤'과 정확히 같은 뜻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연구 결과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의 '스올'이 구약성경에서 '지옥'이나 '음부' 등으로 번역되었으나,
그곳이 악인이 죽은 뒤 불 속에서 고통당하는 지옥의 뜻으로 쓰인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하데스(hades)는 신약에 14번 나오는데,
그 중 10번은 '지옥'(hell)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데스'는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스올'에 해당하는 헬라어임을 
시편 16편 10절을 인용한 사도행전 2장 27절에서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다윗이나 예수님이 장사된 무덤임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행 2:29, 31).
소아시아 무덤들 앞에 [00의 무덤]이라고 쓴 묘비에도 무덤을 뜻하는 헬라어인
'하데스'를 썼음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옥'으로 종종 번역된 신약성경의 '하데스'는 죽은 악인들의 영혼이 고통당하는
불타는 지옥이 아니라, 죽으면 모두 가게 되는 '무덤'이나 '죽음' 자체를 뜻했음을
성경 본문만 주의 깊게 읽어 보아도 쉽사리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17세기 영어 번역 성경인 흠정역(KJV) 등 '하데스'를 대부분 '지옥'으로 번역했던
옛날 번역들과는 달리, 20세기의 새 번역 성경들은 그것을 '무덤' 혹은 원어 그대로인
'하데스'를 써서 지옥으로 번역할 때 생기는 문맥과 신학상의 혼란을 피하고 있습니다.


게헨나(gehenna)에 대해 마지막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신약성경에 '지옥'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게헨나'는 모두 12번 나타나는데,
헬라어로 '게엔나'(geenna)로 불리웁니다.
히브리어로 골짜기를 뜻하는 '게'(ge)와 인명(人名)인 '힌놈'(Hinnom)이 합성된
'힌놈의 골짜기'란 뜻의 지명입니다(수 18:16).
성경에 12번 나타나는 '게헨나'는 명사로 9번, 형용사로 3번 나오는데,
한 번(약 3:6)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께서 친히 사용하신 특이한 표현입니다.
이 '게헨나'만이, 불타고 있는 성경적인 배경의 '지옥'을 묘사하는 용어입니다.
그렇다면 '게헨나'는 어디이며, 타오르는 불은 언제 그리고 언제까지 타오를 불입니까?
지옥의 주소로 소개된 '게헨나'는 다름 아닌 예루살렘 남쪽 비탈 아래의 계곡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져 타락이 극도에 달했을 때,
이 곳에서 자식들을 몰렉 신에게 불살라 제사하기까지 한(대하 28:1-3, 33:1-6, 왕하 23:10),
배도의 현장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골짜기를 '살륙의 골짜기'라 칭할 것임을 예고하고,
배도한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며, "땅이 황폐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렘 7:31-34, 19:2,6, 32:35).
실제로 요시아 왕은 그 골짜기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왕하 23:10).
후에는 처형당한 죄수들의 시체와 죽은 짐승들의 사체를 버리고 온갖 오물을 버리는 곳이 되어,
이를 불태우는 연기가 밤낮 타오르고 있었으며,
구더기와 온갖 벌레들이 서식하고 악취가 풍기는 불쾌한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힌놈의 골짜기', 곧 '게헨나'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악인들이 최후의 형벌을 받을 곳을 상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께서도 이러한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적용하여 
당신의 말씀을 한사코 거역하는 바리새인들과 완고한 인간들을 질책하시며,
그들이 마지막 심판날에 '살륙의 골짜기' 곧 
'게헨나'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막 9:43-47).
그러므로 예수께서 묘사하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이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는(막 9:43, 48)지옥불은 
곧 '힌놈의 골짜기'의 쓰레기와 시체를 태우는 불이었습니다.
이 '게헨나'가 신약성경에는 모두 '지옥'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마 5:22, 29, 30, 10:28, 23:33 참조).
그러나 이러한 지옥은 사람이 죽은 뒤 몸을 떠난 영혼이 불 가운데서 고통받는 곳으로
표현된 경우는 한번도 없고,
장차 있을 재림과 연관된 심판의 때(마 5:22, 25:41)에,
몸이 함께 사루어 없어질 곳으로 분명히 언급되었습니다(마 10:28, 5:29, 30).
그 때와 장소는 예수 재림이 있은지 천년 후에 불못으로 화할 이 땅입니다.
(계 20:7-10, 13, 14, 벧후 3:10-13 참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구약의 '스올'(65번), 신약의 '하데스'(10번), '게헨나'(12번)등
사람이 죽은 뒤에 가는 곳으로 언급된 표현이 87번이나 나오지만 어느 한곳도
죽은 뒤 몸을 떠난 영혼이 가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곳으로 소개된 곳은 없습니다.
단지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쓰레기를 태우는 불이 밤낮 타오르던 
'힌놈의 골짜기'를 뜻하는 '게헨나'를 연상하여,
신약성경은 마지막 심판날에 악인을 태울 불을 '영영한 불'(마 25:41)로 표현했습니다.
오늘날의 힌놈의 골짜기의 쓰레기는 모두 타버렸거나 치워지고,
시체들도 모두 썩어버려서, 지옥을 상징했던 그 '게헨나'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더 이상 불도 타오르지 않고 벌레도 득실거리지 않는
아름다운 성지의 일부가 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힌놈의 골짜기'의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깨닫지 못하고,
이상과 같은 성경의 표현을 악인이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당한다는
'영원지옥설'(永遠地獄說)의 논거로 삼는 것은
학문적으로 신중하지 못한 가르침입니다.

 

 

질문자 채택

re: 왜 성경은 지옥을 게헨나, 하데스, 스올 등등의 다른 단어로 표현하나요?

juni21
답변채택률70.5%
2004.10.20 17:22

질문자 인사

<<>>

일단 저도 이것저것 검색해 보면서,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에서
알게된 사실이라는 걸 밝힙니다^^;
하데스,스올,게헨나,타르타로스
1.하데스와 스올
먼저, 음부라는 말이 구약성서에는 스올(Sheol)로, 신약성서에는 하데스(Hades)로 언급되어 있다. 음부의 의미는 무덤이나 죽음을 뜻한다. 《창세기》 37장 35절에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악인이 죽어서 형벌을 받는 장소로 나타난다.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 땅의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붙게 하는도다”(신명기 32:22)고 나타나 있다. 또 음부는 의인과 악인이 죽어서 함께 거하는 곳으로 나타나 있다.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호세아 13:14)고 기록되어 있다. 

성서에는 음부에 관한 묘사가 여러 곳 있다. “이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욥기 10:22)라고,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시편 31:17)라고 침묵의 장소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시편 116:3)라고 나타나 있듯이 음부는 일과 계획과 지혜가 없고, 만족함이 없으며, 고통스러운 것으로 되어 있다. 

신약성의 음부인 하데스가 나타나는 곳은 《누가복음》 16장 23절에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누가복음 16:23)라고 그곳은 악인이 죽어서 형벌을 받는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죽음이나 육체가 없는 상태이며, 마지막 심판 직전에 악인이 일시적으로 거하는 장소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게헨나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그리스어의 ‘게헤나’는 구약성서 《느헤미야서》 등에 묘사된 동물이나 죄인의 시체를 소각하던 예루살렘성(城) 밖 남쪽의 ‘힌놈의 골짜기’에서 유래한다. 이곳이 곧 죄를 회개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인정하지 않은 자가 최후의 심판에 따라 떨어지게 되는 영원한 불길이 타오르는 장소이다.

3.타르타로스
베드로후서 2:4에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타르타로스)에 던져…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지옥은 어디인가?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의 영혼이 가는 그 지옥(게엔나)과 같은 곳인가? 아니면 다른 곳인가? 만일 다른 곳이라면 다른 단어로 표현되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도대체 근본적으로 지옥(地獄) 즉 『땅의 감옥』이라는 단어 자체가 적합한 용어인가?



정리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옥의 개념은 '게헨나'라는 용어이구요. 시체소각장소인 힌놈의 골짜기를 나타내던 것이 후에 지옥의 개념으로 정착된듯 보입니다.

하데스와 스올은 음부로 표기됩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대표적으로 지옥을 표현하는 용어라고 봐야겠죠?

별도로, 벧후2장에만 나오는 타르타로스는 일반지옥과는 별개의 것으로서, 타락한 천사들이 보내지는 곳으로 보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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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_girl2010-09-20 18:27:11

지옥이라는 곳 자체가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게헨나라는 말이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단순히 게헨나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신 것은, 죄인이 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게헨나는 온 갖 쓰레기들을 버리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것을 후에 번역 과정에서 제대로 이해하지도 않고 지옥으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하데스나 스올 모두다요. 그러니 혼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지요.